(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심각한 병을 앓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부갑상선 기능 항진에 의한 각피 석회화증”이란 긴 이름의 희귀병에 걸린 청년이었다. 칼슘이 몸 안에서 과다 생성되어 축적됨으로써, 온몸이 석회처럼 굳어 버리는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여덟 살에 다리를 절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리에 누워 굳어가는 육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절망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꿈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운 채로 혼자서 영어와 한문을 익혔다. 그리고 역시 누운 채로 한 손에는 볼펜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하기를 30여 개월, 드디어 원고 800매의 고통의 이야기를 탈고한다. 이렇게 탄생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은 놀랍게도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박진석 씨는 SBS 휴먼 드라마에도 소개되었는데,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감동의 휴먼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신앙인은 아니었지만, 지독한 고통에 맞서면서 욥의 믿음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믿음의 드라마였다. 그는 믿음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의 믿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이었다.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의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을 소개한다. 이들을 모두 믿음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아벨도,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사라도, 요셉도, 모세도, 모두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들 믿음의 사람들을 평가하기에 앞서서 ‘믿음이란 뭔가?’, 즉 믿음의 실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시대적 우려를 나타내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져지라고 해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겨자씨 한 알처럼 작은 믿음이라도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신 말씀이다. 히브리서 11장을 통해서 믿음의 실체를 분명히 깨닫고 믿음의 영웅들의 믿음을 본받기를 바란다. 히브리서 11장을 중심으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세 가지를 찾아보겠다.
첫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 실상이란 말은 원어로 “휘포스타시스”(u`po,stasij)라는 말인데 이는 “본질, 실체, 실상”이라는 뜻이다. 믿음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허상과 같은 것이 아니라, 확실히 있는 실상과 같다는 뜻이다. 허상을 신기루에 비교해 볼 수 있다. 신기루는 허상이다. 중국 어느 바다에서 거대한 신기루 현상이 있었다. 바다위에 거대한 도시가 나타나서 네 시간동안 있다가 사라졌다. 이 신기루는 짙은 안개가 주변 작은 섬을 덮기 시작해서 네 시간여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산과 거북, 군함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났다가 대규모 도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허상들은 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신기루 현상은 빛의 굴절현상 때문에 생긴다. 지면이나 수면과 맞닿는 곳에 공기의 온도차가 심할 때 빛이 굴절해서 생긴다고 한다. 신기루 현상은 주로 사막에 많이 나타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보이는데, 가보면 그곳에 오아시스가 없다. 빛이 굴절되어서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신기루 현상이다.
믿음은 이런 신기루 현상과 같은 허상이 아니다. 믿음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요 실상이다. 집에 책상이 존재하듯이, 컴퓨터가 존재하듯이, 내가 옷을 입고 있듯이, 내 손발이 존재하듯이 확실한 실체와 같은 것이 믿음이다. 히브리서 11장이 가르치는 바는 믿음을 갖고 바라는 것은 이런 실체들처럼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하셨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리라. 네가 밟는 땅을 주리라. 너와 네 후손이 열국의 복의 통로가 되리라고 약속하셨다(창12:1-9).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모든 약속들을 믿었다. 아브라함이 믿은 대로 이 모든 것은 훗날 실상으로 다 이루어졌다. 출애굽 시에 약 200만이나 되는 큰 민족을 이루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함으로써 약속된 땅을 얻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모든 민족들이 최고의 복을 받게 되었다. 그는 과연 복의 통로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들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과 미래의 우리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이 모든 것들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믿을 때,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실상으로 분명히 다가온다.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이 바로 이런 뜻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에 “증거”라는 말에 사용된 헬라어 “엘렝코스”(e;legcoj)는 “증명하는 것”(proof)이라는 뜻이다. 믿음 자체가 우리에게 확실히 증명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이걸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과거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구약 성경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직간접적으로 350번이나 예언했다. 약속대로 예수님은 오셨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동정녀를 통해서 오셨다. 약속대로 베들레헴 땅에 오셨다.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 약속대로 우리 죄를 위해 고난 받으셨다. 약속대로 부활하셨다. 그리하여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다.
그리고 주님은 약속대로 재림하실 것이다. 약속을 믿는 자는 주님의 재림이란 실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약속대로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주님의 약속대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주님을 믿기 때문에 믿음으로 가진 비전은 언젠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예수님은 12제자를 훈련해서 세상으로 보내면서 땅 끝까지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다. 주님은 비전이 성취될 것을 미리 내다보았다. 주님의 꿈은 정말 이루어졌다.
지금 부산에서 전도의 열풍을 일으키는 분이 있다. 손현보 목사란 분인데,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라는 책을 썼다. 다음 이야기는 그의 책에 나온다. 손현보 목사는 수년 전에 부산 가까이에 작은 어촌교회에 부임했다. 교인은 장년 24명이 전부였다. 남전도회 모임에 갔더니 일 년 행사가 개 한 마리 키워서 잡아먹는 것이 일이었다. 사업보고를 하는데, 지금 개가 토실토실 살이 졌다는 보고를 했고 남전도회원들은 박수를 치고 야단이었다. 손 목사가 개 키워서 뭘 하느냐고 질문했다. 이렇게 개 키워서 여름에 부부동반으로 놀러가서 잡아먹는 것이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단다. 손 목사는 “이 교회 남전도회는 완전히 개판이구나!”라고 했단다.
이런 목표도 비전도 없는 어촌 교회에 부임해서 부임 첫 설교에 출석교인 100명 전도목표를 발표했다. 교인들이 이는 도저히 불가능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반경 3킬로 내에 주민들 다 합쳐야 300명도 안 된다. 30평도 안 되는 교회에 100명이 어디에 앉느냐? 여건상 불가능하다.”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3개월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그 다음에는 300명을 목표로 정하고 전도하자고 했다. 또 반대했다. 3킬로 내 지역주민이 300명인데 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때 목사님에게 ‘허풍쟁이’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래도 믿고 기도합시다!” 이렇게 해서 “세계로교회”는 열심히 전도하여 2004년에 198명, 2005년에는 258명, 2006년에는 322명, 2007년에는 418명, 2008년에는 590명을 세례 주었다고 한다. 몇 해 전에 4천명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다. 할렐루야!
이 책을 읽으면서 “믿음으로 하면 되구나” 하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세계로교회에 비하면 많은 교회들의 여건은 얼마나 좋은가? 오직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줄 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
둘째,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히브리서 11장 2절은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증거”라는 말은 1절에 사용된 증거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여기에 사용된 말은 ‘증인이 되다’ 혹은 ‘증언하다’라는 뜻을 가진 “마르투레오”(marture,w)라는 말인데, 이의 과거 수동형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옛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영역본 RSV도 같은 뜻으로 번역함).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신앙의 영웅들은 이들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의 인물들을 믿음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한다. 히브리서11장은 신앙의 위인들 모두를 믿음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본장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가 “믿음으로”라는 말이다. 신앙 위인들이 모두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평가이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고.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지었다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다고.
이렇게 모든 신앙 위인을 믿음의 관점에 평가하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길 바란다.
셋째, 믿음은 말씀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는 유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무로부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창1:6).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9).
천지창조의 기사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능력을 보게 된다. 말씀하신대로 모든 피조물들이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난다. 우리의 죄성을 뿌리 뽑고,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재창조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민수기 21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죽었다. 이때 백성들은 모세에게 찾아와서 요청한다. 기도해서 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뱀에게 물린 사람들을 낫도록 하셨다.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위에 높이 매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뱀에게 물린 자가 장대 위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나음을 받았다(민21:9). 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의 치유방법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낫는다.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사람은 나았을까, 안 나았을까? 물어보나 마나이다. “그것 쳐다본다고 뭘 났느냐”라고 생각하고 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믿음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이 놋뱀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장대위에 달린 놋뱀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쳐다본 사람이 나았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사건도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든지 믿음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 믿음은 이렇게 단순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씻은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영생을 얻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왜 이런 효력이 나타나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할렐루야!
신앙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곧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신앙인이 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간다. 구약시대의 모든 신앙의 선열들을 평가할 때 성경은 한 가지 중요한 관점에서 평가한다. 바로 믿음이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사라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사사들도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인격적인 요소 중에 하나는 누가 뭐래도 믿음이다. 최후의 심판 날에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다른 모든 좋은 영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없다면 천국 문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의 영성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 적용 질문: 나는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약속하신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가? 자신을 성찰해보자. 믿음이 흔들린다면 무엇이 나의 믿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요소인가 면밀하게 자신을 성찰해보고, 확고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점검해보자. 예를 들면, 현대 과학의 영향으로 성경에 대해 의심이 생기지는 않는가? 아니면 성경을 읽지 않아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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